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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의 동북공정을 이해하기 위한 보충글입니다

 

“고구려/백제가 평정한 남으로 오월, 북으로 유연제노”에 대하여

 

삼국사기 최치원전에서

"고구려 백제가 전성기에 강병백만을 보유하고
남으로 오/월
북으로 유/연/제/노
를 평정하여 장안국가에 큰 해가 되었다"

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이 사실에 대하여 단 한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유/연/제/노/오/월”은 무엇인가?

주나라와 그이전 지명과 제후국호이다.


그 위치는 “사기”에 의하여 찾아보면

연은 산서성 북쪽이고,
제는 산동성북쪽이고
노는 산동성남부이고
한나라때 유주는 하북성 북쪽이다.
오는 강소성 남부이고
월은 절강, 복건성 등지이다.         

모두 중국에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 땅을 고구려/백제가 평정하였다는 것이다

최치원전에만 있는 내용이므로 모든 것을 동원하여 진위를 파악하여 보아야 한다

중국25사에 있는 지리지로 파악하기에는 미흡하다.


중국에서 남북조로 불리는 위나라와 송/제/양/진의 지리지를 살펴보면


위나라의 군으로 청하군(淸河, 貝丘, 武城)이 있다.
그런데 송나라에도 청하군(淸河, 貝丘, 武城)과 남청하군(淸河, 貝丘, 武城)이 있다.

같은 이름의 군이 있을수는 있다.

그러나
현명이 동일한 군이 한나라에 2곳 그리고 다른 나라에 있을수 있는가? 
지리지로 그 나라의 강역을 표시하기에는 문제점이 있다고 보았다.


중국지명을 알수 있는 가장 오래된 지도가 송나라때의 “우적도”이다.

그 지도에 있는 지명이 현재 중국지도에 99%가 있다면
현재의 중국 지도로 송나라 이전 나라들의 위치를 연구하는데
지리지 보다 분명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삼국시대를 나타내는 삼국사기 중국 25사 삼국유사 호태왕비 진묘비에 있는 지명이
우리가 고구려 백제가 있었다고 주장하여온 한반도에는 한/둘뿐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지도에 유연제노오월이었던 지역에는 지금도 다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지역에 고구려 백제가 있었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닐지


같은 문자를 사용하는 지역에서 지명은 같은 것이 있을수 있다지만
삼국시대 지명이 중국에는 있는데 한국에는 없다. 

분명한 것은 기자가 살던 남북으로 삼국시대의 지명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구려가 한나라와 전쟁하던 지역에서 당나라와 전쟁하는 지명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남쪽에는 백제가 패망할때의 지명이 지금도 있다.

김부식이 알수 없다는 지명도 40여개가 지금도 있다.
분명히 새로운 시도를 하여 보아야 한다


삼국사기에서 삼국시대까지의 역사의 맥을 살펴보면

고구려는 고신씨, 신라는 소호금천씨의 후예라고 하였고,
삼국은 기자가 살던 지역에 있었다고 하였으며
그후 을지문덕/최치원/장보고로 이어지고 있다.

분명히
고신과 소호와 신인왕검과 기자와 장보고 최치원은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역사를 만들어온 인물들이 같은 지역이니 그것을 부정하기만 할 수는 없다.


삼국유사에서 삼국시대까지 역사의 맥을 살펴보면
“단군 그리고 기자/위만/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 25사에서 동이관련자료에서

구려의 치우,
단군 그리고 기자, 위만, 기준을 이어 을지문덕/장보고/최치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분명히 밝혀질수 있는 것은
치우가 살던 지역에 소호 고신 그리고 기자 그리고 장보고 최치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남으로 오월과
북으로 유연제노지역에 고구려 백제가 평정하였다고 하는데
그 사이에 최치원의 사로 즉 신라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신라만이 있었다는 고유명절인 8월15일과 9월9일이
현재까지도 그지역에서만 가장 왕성한 명절로 보유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600년 이전 삼국사기에 나타난 일식기록에서 집중관측지를 연구한 결과가
유연제노오월지역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하고도 명확한 과학적 연구에서 유연제노오월에 고구려 백제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중국25사 동이전 각 나라와의 관계를 기록한 것을 도표로 만들고
각 나라의 지명을 삽입하고
현대 지도에 맞추면 유연제노오월지역에 일치되고 있다.


각나라 위치 배열도에 지명을 삽입한 것은
삼국지 후한서에서 당서까지 모두 동일한 지역으로 나타난다  


자연환경을 살펴보면

백제 개로왕때 한성에서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하였다.
하수를 따라 숭산의 북쪽에서 사성의 동까지 제방을 구축했다고 하는데
하수와 숭산 그리고 제방이 제노와 오월사이에 있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는 흙을 구워 벽돌을 만들고 성을 만드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다


또 의자왕말년

2월 서울의 우물빛이 핏빛 같았다 사자하의 물빛이 붉어 핏빛같았다
4월 개구리 수만마리가 나무위에 모여들었다.
5월 폭풍 폭우가 쏟아졌다.
7월 백강에서 당군 전함이 네달았다.

고 하였는데


현재의 금강은 큰물이 흐른다 하여도 1주일이면 정상으로 되돌아 온다

그런데 5월에 폭풍 폭우가 있었으니
많게는 3개월 작게는 2개월동안 강물이 같았다고 보아야 하는데
바로 유연제노오월지역이며 백제지명이 많이 있는 지역에서는 가능한 기록인 것이다
           

그럼에도
한반도와 만주에 고구려 백제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은 거짓이란 말인가 ?


만주에 호태왕비, 모두루비,
북한의 고구려직책이 기록된 유물 진묘비,
공주의 사마왕묘비가 있으니

당연히 고구려 백제가 있었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유적은 순간을 나타낼수는 있어도 윤곽을 나타내지는 못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는 한반도지역으로 들어온 것이 서기 32년이고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고구리간이 독립한 503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백제는 고구려의 일부로 공주부여지역으로 진출하여
503년 독립한 신라에 의하여 축출된 것으로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유연제노오월에 고구려 백제가 있었다고 하여도
우리역사가 축소되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우리는 고조선을 국가 기원으로 하고 있다고 하지만
삼국사기, 중국25사 및 야사에서 치우천자가 있던 구리(九黎)시대가
아시아 최초의 국호이며 그때의 백성 묘를 기준으로 하기도 한다
 

코리아는 고리(高麗)를 계승한 나라이고
고리는 고구리(高句麗)를 계승한 나라이고
고구리는 구리의 전통을 계승하여 다물하려고 노력했던 나라이다


유연제노오월은 치우시대부터 신라말까지 동이의 무대이다

그리고
한족으로 불리우는 장안-낙양중심국가들의 국조 “헌원”도 동이의 1인이다



순임금은 동이인데 7대조가 황제 헌원이다
헌원은 소전이라는 제후의 아들이고
이때 치우는 구리(九黎)의 천자이니

정사에서 밝힌
아시아의 최초의 나라 구리에서 고구리까지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였다는 기록이니
유연제노오월과 고구려백제에 대한 연구를 새롭게 하여야 한다

한국인도 중국인도 모두 구리의 후예로서 “구리족”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한국정부에도
한국학자에게도
중국정부에도
중국학자에게도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밝히도록 촉구해야 할것이다

 

 

출처  우리역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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